국채 금리 상승 속도가 더 문제…5% 돌파 후 악순환 가능성

미 국채 시장의 경계선이 5% 이후로 이동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다시 4.7% 부근까지 올라오면서 채권시장의 관심이 단순한 5% 돌파 여부에서 그 이후의 움직임으로 옮겨가고 있다. 5%를 잠깐 넘는 것보다 돌파 이후 매도세가 가속되면서 5.25%, 5.5%까지 빠르게 치솟는 이른바 금리 스파이럴이 나타날 가능성을 더 경계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가 시장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전망에서는 10년물 금리가 이달 말 5%를 넘어서는 시나리오뿐 아니라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전 5.25%, 2027년 중반 5.5%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주요 위험 구간으로 거론됐다.
최근 10년물 금리는 미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 발표 직후 4.64%대까지 떨어졌지만 하루 만에 다시 4.70% 안팎으로 복귀했다. 30년물 역시 5.2%를 웃돌고 있다. 재무부가 10년에서 30년 구간의 바이백을 최소 두 배로 확대하고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추가 확대 가능성까지 열어뒀지만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를 눌러두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제 5%라는 숫자 자체보다 금리가 그 수준을 돌파한 뒤 얼마나 빠르게 상승하느냐를 더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한 달에 60에서 90bp 오르면 주식시장 충격 커질 수 있어
금리 수준 못지않게 상승 속도가 중요한 이유는 금융시장이 새로운 금리를 흡수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과거 시장 흐름을 분석한 결과 장기 국채금리가 한 달 동안 약 60에서 90bp 급등하는 구간에서는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크게 악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과 짧은 기간에 수십 bp씩 뛰는 것은 주식과 회사채 시장에 전혀 다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물 금리는 미국 주식의 가치평가부터 주택담보대출, 회사채, 기업의 투자비용까지 광범위한 금융상품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 성장주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계산할 때 적용되는 할인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기업들이 신규 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해야 하는 금리도 동시에 올라간다.
최근 시장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10년물이 4.7%대로 올라서고 30년물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반도체와 고성장 기술주에서 매물이 집중됐고 투자자금 일부가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같은 방어 업종으로 이동했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대규모 회사채까지 발행하고 있다. 정부의 국채 공급과 민간기업의 회사채 공급이 동시에 늘어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 자금조달 비용을 통해 실물 투자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시장에는 2023년 가을의 기억이 남아 있다
투자자들이 5% 이후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보는 배경에는 2023년 하반기의 경험이 있다.
당시 미국 10년물 금리는 9월 4.5%를 돌파한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5%에 근접했다. 연준이 수십 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긴축 사이클을 진행했던 시기였지만 시장이 특정 금리대를 뚫은 뒤 채권 매도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기존 장기채를 보유한 투자자의 평가손실이 커지고 일부 투자자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채권을 추가 매도할 수 있다. 이 매도가 다시 금리를 올리면 손실을 피하려는 또 다른 매도가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투자자에게는 문제가 더 커진다. 금리 상승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포지션 축소가 필요해지고, 이를 위해 장기채를 매도하면 금리가 다시 상승한다. 시장에서 거론하는 금리 스파이럴은 단순히 경제 전망이 나빠져 금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상황과 이런 수급 악순환을 구분하는 표현이다.
특히 5.25%와 5.5%는 최근 20여 년 동안 10년물이 안정적으로 거래된 경험이 거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시장이 가격 기준을 잡기 어려운 구간으로 평가된다. 5%를 넘더라도 곧바로 매수세가 들어오면 충격은 제한될 수 있지만 새로운 금리 수준에서 채권 매수자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으면 상승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연준 긴축보다 재정과 유가가 더 복잡한 변수
현재 상황은 2023년과도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장기금리 상승의 핵심 동력이었다. 지금은 연준의 추가 인상 전망이 크게 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장기금리가 오르고 있다.
미국의 총 공공부채는 40조달러를 넘어섰고 높은 재정적자가 이어지면서 시장이 앞으로 소화해야 할 국채 물량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국채금리가 올라갈수록 정부 이자비용도 증가해 다시 재정에 부담을 주는 구조다.
여기에 미·이란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한 점도 장기채 투자자에게 부담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제한적인 통항과 미국의 대이란 경제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WTI는 다시 배럴당 80달러 중후반으로 올라섰고 브렌트유도 90달러를 웃돌았다.
유가가 갑자기 추가 상승하면 최근 둔화하고 있는 미국 물가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생긴다. 장기채는 미래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기 때문에 유가 급등은 연준의 실제 기준금리 결정 전부터 장기금리에 반영될 수 있다.
최근 재무부가 장기채 바이백 규모를 확대했음에도 10년물이 빠르게 4.7% 부근으로 복귀한 것도 이러한 문제를 보여준다.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개선하는 정책은 가격 급락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지만 재정적자와 물가, 대규모 채권 공급이라는 배경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워시 연준의 관망이 길어질수록 뒤늦은 긴축 우려도 커져
연준의 대응도 시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케빈 워시 의장이 이끄는 연준은 최근 경제지표가 엇갈리면서 추가 금리 인상 여부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7월 물가지표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이 일부 둔화됐고 고용과 주택 관련 데이터에서도 경기 냉각 신호가 나타났다. 반면 최근 필라델피아 연은 제조업지수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고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경기 둔화와 여전히 높은 물가 사이에서 연준이 관망할 이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다시 뛰면서 물가가 재가속할 경우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현재의 혼재된 지표를 이유로 너무 오래 기다렸다가 인플레이션이 다시 강해지는 것을 확인하면 이후 더 빠르고 큰 폭의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7월 FOMC 의사록에서도 여러 위원이 금리 인상을 선호했고 많은 위원이 물가 둔화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당장 9월 인상이 시장의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에너지 가격과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다시 올라가면 연준의 선택지는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장기 국채시장에는 두 가지 압력이 동시에 들어온다. 인플레이션 위험 때문에 연준의 정책금리 경로가 높아지고, 막대한 국채 공급과 재정적자 때문에 장기물을 보유하기 위한 추가 보상까지 요구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보는 위험 구간은 10년물 5% 한 지점에 머물지 않는다. 5% 돌파 이후 채권 매수가 충분히 유입돼 금리가 안정되는지, 아니면 5.25%와 5.5%를 향해 수주 사이 수십 bp씩 상승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최근처럼 재무부의 바이백에도 금리 상승세가 빠르게 되살아나는 상황에서는 절대적인 금리 수준보다 상승 속도가 주식과 신용시장에 훨씬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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