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자체 AI 반도체 개발 시동…구글 TPU 핵심 인재 영입

앤트로픽 구글 TPU 핵심 인재 영입하며 자체 칩 개발 본격화
앤트로픽이 구글의 맞춤형 AI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던 아미르 살렉을 영입하며 자체 AI 칩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엔비디아와 구글, 아마존 등 외부 공급업체의 반도체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의존해왔던 앤트로픽이 모델뿐 아니라 핵심 컴퓨팅 하드웨어까지 직접 설계하는 방향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는 움직임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살렉을 컴퓨팅 팀에 합류시켰으며, 그는 컴퓨팅 부문을 총괄하는 제임스 브래드버리에게 보고하게 된다. 앤트로픽도 이번 영입 사실을 확인했다.
살렉은 구글이 자체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역량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2013년부터 관련 조직을 이끈 인물이다. 구글 최초의 자체 생산 실리콘인 1세대 TPU를 비롯해 2022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전반적으로 초기 7세대 TPU 개발과 제품화를 주도했다. 구글에 합류하기 전에는 엔비디아에서 약 8년간 근무하며 GPU와 테그라 제품 개발, 시스템온칩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번 영입은 단순한 고위급 인사 이동보다 앤트로픽이 최근 공개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자체 실리콘 전략과 연결된다. 앤트로픽은 이달 초 맞춤형 반도체 조직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실제 칩 설계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 채용을 시작했다.
회사 채용 공고에는 프런트엔드 설계와 사전 검증, 물리설계, 파운드리 기술, 패키징, 신호 및 전력 무결성 등 반도체 개발 전반을 담당할 인력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순히 특정 칩을 외부 업체에 주문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적으로 아키텍처와 사양을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방향이 확인된 셈이다.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을 쓰면서 자체 칩도 준비
앤트로픽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선다고 해서 기존 공급망을 곧바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현재 엔비디아 GPU와 구글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엄 계열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AI 가속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AMD와도 컴퓨팅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외부 칩 확보 규모를 더 늘리면서 장기적으로 자체 칩을 추가하는 멀티칩 전략에 가깝다. AI 모델의 크기와 사용자 수가 빠르게 늘면서 한 공급업체의 생산능력만으로 필요한 연산량을 충족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 입장에서 자체 칩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공급량과 비용이다. 최첨단 AI 가속기는 생산 가능한 물량이 제한돼 있고 세계 주요 AI 기업과 클라우드 업체가 동시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필요한 반도체를 원하는 시점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모델 개발뿐 아니라 이미 서비스 중인 클로드의 추론 용량 확대도 제한된다.
직접 설계한 칩은 자사 모델의 실제 연산 패턴에 맞춰 하드웨어를 최적화할 수도 있다. 범용적인 AI 가속기는 여러 고객과 워크로드를 지원해야 하지만 자체 칩은 클로드의 학습과 추론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산, 메모리 이동, 네트워킹 구조에 맞춰 설계할 수 있다.
최근 AI 업계에서는 모델 성능뿐 아니라 같은 작업을 얼마나 적은 전력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운영할 경우 한 번의 추론 비용에서 발생하는 작은 차이도 전체 데이터센터 비용에서는 막대한 규모로 커질 수 있다.
오픈AI도 할라페뇨 공개하며 AI 기업 칩 경쟁 가속
앤트로픽의 움직임은 경쟁사들이 이미 자체 AI 반도체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오픈AI는 지난 6월 브로드컴과 공동 개발한 첫 자체 AI 가속기 할라페뇨를 공개했다. 할라페뇨는 기존 범용 AI 칩을 수정한 제품이 아니라 대규모 언어모델의 추론 작업을 처음부터 목표로 설계한 반도체다.
오픈AI는 칩 아키텍처와 모델, 커널, 메모리 이동, 네트워크와 서빙 환경을 함께 최적화했으며 올해 말부터 실제 데이터센터에 투입할 계획이다. 브로드컴은 칩 구현과 네트워킹을 담당하고 셀레스티카가 보드와 랙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다.
구글은 이미 오랜 기간 TPU를 자체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사업에 활용하고 있고 아마존은 트레이니엄과 인퍼런시아, 메타는 MTIA를 확대하고 있다. 모델 개발사와 클라우드 업체가 엔비디아 GPU를 계속 구매하면서 동시에 자체 칩을 개발하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살렉의 영입이 주목되는 이유도 구글이 이 전략을 가장 먼저 대규모로 실행한 기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TPU를 통해 자사 AI 서비스에 필요한 컴퓨팅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외부 클라우드 고객에게도 자체 가속기를 제공하는 사업 구조를 구축했다. 앤트로픽은 해당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본 인물을 자체 컴퓨팅 조직에 합류시킨 셈이다.
자체 칩 개발과 동시에 외부 컴퓨팅 확보에도 막대한 자금 투입
자체 반도체가 실제 데이터센터에 투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앤트로픽은 현재 필요한 컴퓨팅 용량을 확보하기 위한 외부 계약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영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프랙틸과는 약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초기 칩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랙틸이 공급할 AI 칩은 2027년부터 실제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공급 규모를 추가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계약이 알려진 뒤 프랙틸은 약 6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6억달러 규모의 신규 자금 조달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약 10억달러 수준이었던 평가와 비교하면 불과 몇 달 사이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데이터센터 용량 계약 규모는 더욱 크다. 앤트로픽은 최근 라이엇 플랫폼스가 텍사스 록데일에서 제공하는 약 191MW 규모의 컴퓨팅 용량을 사용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 계약 규모만 약 91억달러이며 기간 연장 옵션이 모두 적용될 경우 전체 계약 금액이 16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
엔비디아가 지원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업체 볼타 인프라와도 노르웨이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는 약 100억달러 규모의 장기 컴퓨팅 계약이 추진됐다. 해당 시설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 시스템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처럼 앤트로픽은 자체 칩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엔비디아와 구글, 아마존을 비롯한 기존 공급망과 신생 반도체 업체, 신규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 동안 발생할 AI 컴퓨팅 부족을 단일 공급처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AI 경쟁이 모델에서 전력 반도체 데이터센터까지 확장
앤트로픽의 자체 실리콘 조직 구축은 AI 기업들의 경쟁 영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주요 경쟁은 어떤 기업이 더 뛰어난 대규모 언어모델을 개발하느냐에 집중됐지만 이제는 그 모델을 돌릴 칩과 전력, 데이터센터를 누가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까지 핵심 경쟁력이 됐다.
AI 모델의 학습뿐 아니라 실제 서비스에 필요한 추론 연산량이 급증하면서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용자가 증가할수록 지속적으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델을 한 번 학습한 뒤 끝나는 구조가 아니다.
앤트로픽이 최근 자체 칩 개발팀을 만들면서도 외부 공급업체와 수십억달러 단위의 장기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것은 이런 수요를 반영한다. 자체 실리콘이 성공하더라도 단기간에 엔비디아나 구글, 아마존 칩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 대신 특정 클로드 워크로드를 자체 칩으로 이전해 비용과 전력 효율을 낮추고 부족한 외부 가속기를 다른 연산에 배치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경로로 거론된다.
현재 앤트로픽은 자체 칩의 구체적인 아키텍처나 생산 파트너, 출시 시점을 공개하지 않았다. 최근 채용도 초기 조직 구축 단계여서 실제 반도체가 데이터센터에 투입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글 TPU 사업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살렉의 합류로 앤트로픽이 자체 반도체를 단순 검토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개발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오픈AI가 할라페뇨를 올해부터 투입하고 구글과 아마존이 자체 가속기 공급을 계속 확대하는 가운데, 앤트로픽까지 직접 칩 설계에 뛰어들면서 프런티어 AI 기업들의 경쟁이 모델에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풀스택 인프라 경쟁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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