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의장 잭슨홀 기조연설

워시 AI를 새로운 생산 요소로 규정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인공지능을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생산 요소로 규정했다. 동시에 연준의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서는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줄이고 최신 경제 흐름과 금융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그때그때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워시 의장은 28일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AI와 포워드 가이던스, 통화정책 운영 원칙, 현재 미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차례로 제시했다.
연설의 첫 부분에서는 AI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워시는 최근 AI 발전 속도가 불과 몇 년 전 예상보다 빨라졌고 AI 관련 인프라에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AI 연구기업 두 곳의 연간 환산 토큰 판매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 1년 전보다 500% 이상 증가했다는 수치도 언급했다.
그는 AI를 경제와 통화정책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변수이자 잠재적인 새로운 생산 요소라고 표현했다. AI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노동을 보완할지 대체할지, 차세대 모델의 자본집약도가 더 높아질지 등이 연준이 확인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AI 투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초기에는 AI 연구기업과 반도체업체, 에너지기업, 클라우드 사업자 등 희소한 자산을 가진 기업에 어느 정도 돌아가는지, 이후 기업과 소비자에게 얼마나 확산되는지도 연구 대상으로 제시했다.
연준은 생산성과 고용을 담당하는 태스크포스를 통해 관련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워시는 AI 연구 결과가 현재의 금리 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작업은 앞으로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분석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포워드 가이던스 줄이고 시장의 자체 판단 강조
워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준이 도입했던 포워드 가이던스가 당시에는 필요한 정책 수단이었지만 평상시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정책 커뮤니케이션에서 투명성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모든 의사소통은 올바른 통화정책 결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정책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금리 결정을 사실상 약속하면 시장과 기업, 가계의 판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연준 스스로도 실제 정책 결정 시점에 필요한 선택의 자유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준과 금융시장이 서로의 신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이른바 거울의 방 문제로 설명했다. 시장이 경제 자체보다 연준의 금리 신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다시 연준이 그런 시장 가격을 경제 전망의 주요 근거로 활용하면 새로운 경제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시는 시장 참여자들이 생산과 고용, 인플레이션을 직접 분석해 전망을 형성해야 하며 연준 역시 국채 가격과 거래량, 달러 가치, 신용 공급 여건, 원자재 가격 등 시장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가능한 한 왜곡되지 않은 형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에 구체적인 반응 함수를 공개하는 방식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경제 상황과 물가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정책 공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책 결정에 중요한 요인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워시는 2021년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책 대응을 늦췄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향후에는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경제모형과 정책 규칙을 개발하겠지만 경제 전망에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물가 목표 고정 단기금리를 핵심 정책수단으로
워시는 앞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할 때 적용할 핵심 원칙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오래된 경제지표나 한 번 발표된 개별 수치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은 미래 경제 상황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관련성과 적시성, 정확성이 높은 정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는 경제의 총수요와 총공급 간 균형을 판단해야 하지만 실제 공급능력은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정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물가 목표에 대해서는 연준이 사용하는 PCE 가격지수 기준 2%가 확고하게 고정된 목표라고 재확인했다. 인플레이션이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평균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며 물가 안정을 실제로 달성하는 것은 연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최대고용 역시 연준의 법적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워시는 물가 안정과 최대고용을 서로 충돌하는 목표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높은 인플레이션 자체가 경제적 번영과 고용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중기적으로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책수단에서는 단기금리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명시했다. 대규모 자산매입과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화량도 다시 통화정책 분석의 중요한 요소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만드는 통화뿐 아니라 은행과 금융시스템을 통해 생성되는 통화가 금융 여건과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 혁신으로 통화와 경제를 연결하는 구조가 바뀌었다고 해서 통화가 금융 여건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기업투자 빠르게 증가 금융 여건도 제약적이지 않아
현재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시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도 노동시장은 안정적이고 생산은 견조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다는 데 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설비투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장비와 무형자산 투자의 최근 4개 분기 증가율은 약 9%로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워시는 올해 설비투자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AI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
S&P500 기업들의 이익은 최근 1년 동안 20% 이상 증가했고 기업들의 이익률도 과거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기업 설비투자와 이익에 대한 시장 기대도 높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의 신용 스프레드는 역사적으로 낮은 범위에 있으며 발행 규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기준 역시 과거와 비교해 완화된 수준에 있다는 것이 워시의 진단이다.
그는 주택과 농업 등 일부 분야에서는 압박이 나타나고 있지만 신용시장과 대출시장을 포함한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질 소비지출은 최근 4개 분기 동안 2% 이상 증가했다. 소비와 민간투자를 합산한 민간 국내 최종구매도 올해 들어 약 3%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업률 4.1% 노동시장은 완전고용에 부합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미국 실업률은 4.1%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최근 2년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의 4주 이동평균도 수십 년 사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워시는 팬데믹 이후 근로자와 기업 사이에서 대규모 직업 재배치가 발생하면서 현재 노동시장의 이직률이 비교적 낮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노동 공급 증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매달 새로 늘어나는 일자리 수 자체가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졸업자를 비롯해 일부 취약한 영역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일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현재 미국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연준의 두 가지 책무 가운데 고용보다 물가 쪽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 워시의 현재 경제 진단이다.
65개월 높은 인플레이션 책임 연준에 있다고 강조
물가에 대해서는 노동시장과 다른 평가를 내렸다. 연준이 선호하는 12개월 PCE 물가상승률은 3.7%, 최근 6개월 상승률을 연율로 환산하면 4.1%로 모두 연준의 2% 목표를 웃돌고 있다. CPI와 PCE의 근원 물가지표 역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워시는 현재 연준이 가장 집중해야 할 대상은 물가라고 밝혔다. 최근 물가 상승을 특정 품목의 일시적인 움직임과 구분해 경제 전반의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정체돼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각종 물가지표는 2022년 고점에서 크게 내려왔지만 최근 2년 동안의 추가적인 둔화 속도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올여름 PCE와 CPI가 예상보다 양호하게 발표됐지만 이것만으로 기조적인 물가 추세가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PCE를 구성하는 199개 세부 품목 가운데 최근 12개월 동안 가격 상승률이 3%를 넘은 상품과 서비스의 비중은 54%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후 최고치였던 약 77%보다는 낮지만 팬데믹 이전 20년 평균인 32%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6개월 기준으로도 PCE 구성 품목 가운데 49%가 연율 3% 이상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도 함께 확인해야 할 요인으로 언급했다.
중기 인플레이션 기대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인플레이션 보상 지표는 현재 대체로 안정돼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동안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연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워시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 지난 65개월에 대한 책임이 중앙은행에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그는 “65개월 동안 지속된 높은 인플레이션의 책임은 중앙은행에 있으며, 그 책임이 중앙은행에 있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향후 정책 판단의 기준도 물가 흐름에 맞췄다. 워시는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2% 목표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연준에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연설에서 9월 회의의 구체적인 금리 결정을 예고하지는 않았다. 워시는 특정 결정이 아니라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원칙과 규율에 전념하고 있다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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