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이란 전쟁 재점화로 3분기 원유 공급 부족 하루 180만 배럴”

IEA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 재고 급감 전망
국제에너지기구가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차질로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높은 유가로 올해 세계 원유 수요 자체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 감소 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나면서 재고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IEA는 올해 글로벌 원유 공급이 전년보다 하루 430만 배럴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전망했던 하루 370만 배럴 감소보다 공급 전망을 다시 낮춘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재개되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연결하는 주요 해상 운송로의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걸프 지역의 생산과 수출 회복 속도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요 역시 고유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이 연료 사용을 줄이고 정유사들이 원유 처리량을 조절하면서 올해 세계 원유 수요는 감소할 전망이다. 그러나 수요 감소만으로 공급 차질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IEA의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는 하루 약 18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기준으로는 5년 만에 가장 큰 공급 부족 규모다. 전쟁 이전 시장에 쌓여 있던 여유 물량이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그 완충 장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3분기 원유 재고 감소 속도 기존 전망의 두 배 이상
IEA가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글로벌 원유 재고다.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올해 3분기 세계 원유 재고 감소 속도가 기존 예상치보다 두 배 이상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원유 시장에서 재고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불균형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때는 남는 원유가 저장되고, 반대로 생산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면 저장된 원유가 시장으로 나온다. 현재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란 전쟁 초기에는 세계 원유 시장에 상당한 규모의 재고가 축적돼 있었기 때문에 중동 공급 차질이 즉각적인 물리적 부족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2025년까지 공급 증가 속도가 수요를 웃돌면서 글로벌 재고가 충분히 쌓여 있었고, 중국을 비롯한 주요 소비국도 상당한 원유를 비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동산 원유 공급이 감소한 상태에서 소비국과 정유사들이 보유 재고를 계속 사용하고 있고, 각국 정부가 비상 비축유까지 시장에 공급하면서 기존 완충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글로벌 관측 가능 원유 재고는 최근 79억 배럴 아래로 내려가면서 지난해 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감소했다. 단순히 원유 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추가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전쟁 초기보다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공급 부족의 핵심
현재 원유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쟁 이전인 2025년 기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이란 등 주요 산유국이 걸프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운항 여부는 세계 원유 공급과 직접 연결된다.
특히 이라크와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은 원유 수출 대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해협 운항이 장기간 제한되면 산유국이 실제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생산한 원유를 해외 시장으로 운송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IEA가 7월 이후 글로벌 공급 전망을 다시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단계적으로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되면서 원유 수송량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졌다.
사우디와 UAE 우회 송유관이 최악의 상황 막아
그렇다고 걸프 지역의 모든 원유 수출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보유한 대체 송유관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지대에서 생산한 원유를 홍해의 얀부항으로 보내는 동서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UAE 역시 아부다비 내륙의 원유 생산시설에서 오만만에 위치한 푸자이라까지 연결되는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다.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해협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 경로를 이용한 원유는 해협 폐쇄 영향을 받지 않는다.
IEA는 두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대체 송유관의 여유 수송 능력을 하루 약 350만~550만 배럴로 보고 있다.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던 하루 약 2,000만 배럴과 비교하면 전체 물량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공급 공백을 줄이는 데는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제한적으로 운항하는 셔틀 유조선과 저장시설 활용, 걸프 지역 외 산유국의 수출 증가 등이 더해지면서 전쟁 초기 우려했던 수준의 공급 붕괴는 피하고 있다.
고유가가 수요를 줄이면서 시장 충격 일부 흡수
원유 공급 부족을 완화하고 있는 또 다른 변수는 높은 가격에 따른 수요 감소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소비자는 차량 운행과 연료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물류와 생산 비용을 관리하기 위해 에너지 사용량을 조절한다.
정유회사 역시 수익성과 원유 확보 상황에 따라 가동률을 낮출 수 있다. 항공과 석유화학처럼 원유 가격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에서도 고유가가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IEA는 올해 전체 글로벌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 초기 공급 부족 규모만 놓고 보면 훨씬 심각한 가격 충격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고유가가 소비를 억제하면서 실제 공급과 수요 사이의 격차는 일부 줄어들었다.
문제는 공급 감소 폭이 수요 감소보다 크다는 점이다. 원유를 덜 사용하더라도 생산과 운송 감소폭이 그보다 크면 부족한 물량은 결국 재고에서 충당해야 한다. 현재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구조다.
비상 비축유 방출도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세계 주요 소비국들은 이미 대규모 비상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했다. IEA 회원국들은 지난 3월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약 4억 배럴 규모의 비상 원유 재고를 시장에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IEA가 설립된 이후 실시한 최대 규모의 공동 비축유 방출이었다. 미국이 가장 많은 물량을 부담했고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주요 회원국들도 자국 비축유와 민간 의무 비축 물량을 활용해 시장 공급을 확대했다.
전략 비축유는 갑작스러운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시장이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원유를 생산하는 유전과 달리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채워야 하는 한정된 재고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비축유를 계속 방출하면 다음 공급 충격에 대응할 여력이 줄어든다. 현재 IEA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비축유 방출만으로 장기간 공급 부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말에는 다시 공급 과잉 가능성
현재 원유 재고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IEA는 이러한 상황이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이 점차 정상화되고 중동 지역 생산과 수출이 회복될 경우 올해 말에는 글로벌 원유 시장이 다시 공급 과잉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쟁으로 생산이 줄었던 중동 국가들의 공급이 정상화되는 동시에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 가이아나 등 중동 이외 지역의 생산 증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공급이 회복되면 현재 재고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물량이 다시 저장시설로 들어가기 시작할 수 있다. IEA는 내년에는 생산 회복 속도가 수요 증가 속도를 크게 웃돌면서 올해 고갈된 글로벌 원유 재고를 본격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공급 부족과 향후 예상되는 공급 과잉 전망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전쟁과 해상 운송 차질 때문에 시장에 필요한 원유가 부족하지만, 운송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중단됐던 생산 능력이 다시 시장에 복귀하면서 수급 구조가 빠르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도 비축유 다시 채워야
공급이 정상화된 이후에는 정부 차원의 원유 수요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을 비롯한 IEA 회원국들이 올해 공급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한 비상 비축유를 다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략 비축유를 보충하는 과정에서는 정부가 원유 시장의 새로운 구매자로 등장한다. 시장에 충분한 초과 공급이 발생하는 시기에 비축유를 채우면 가격 충격을 줄이면서 국가의 에너지 안보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예상되는 공급 과잉 물량 가운데 일부는 각국의 전략 비축유 재구축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공급이 정상화된다고 해서 모든 초과 원유가 곧바로 상업 시장에 쌓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올해처럼 전 세계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한 이후에는 각국 정부가 기존보다 높은 수준의 비축 필요성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특정 수송로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실제 공급 위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재고 감소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중요성 커져
현재 원유 시장이 전쟁 초기보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공급 차질이 해결됐기 때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우회 송유관, 비상 비축유 방출, 민간 재고 감소, 중동 이외 지역의 생산 확대, 높은 유가에 따른 수요 감소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재고와 비축유는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글로벌 원유 재고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수록 추가적인 생산 차질이나 해상 운송 중단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도 함께 감소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원유 수송이 재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쟁이 다시 확대될 경우 이미 낮아진 재고를 추가로 사용해야 한다. 반대로 해협이 정상화되면 걸프 지역의 생산과 수출 회복으로 현재의 공급 부족이 빠르게 완화되고 올해 말 예상되는 공급 과잉 전환 시점도 앞당겨질 수 있다.
세계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현재 시장의 공급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국제유가의 방향 역시 단순한 수요 전망보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통행량과 중동 지역 생산 회복 속도, 그리고 글로벌 재고 감소세가 언제 멈추는지에 더욱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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