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CEO “2027년 메모리 공급, 2026년보다 더 빠듯할 것”

마이크론 2027년 메모리 공급이 올해보다 더 빠듯할 것
마이크론이 현재의 메모리 공급 부족이 올해를 넘어 2027년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HBM뿐 아니라 일반 D램과 낸드까지 빨아들이는 가운데 스마트폰과 PC, 산업용 장비, 로봇에서도 메모리 탑재량이 늘면서 과거와 다른 수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 고객들이 현재 회사가 공급을 약속할 수 있는 물량보다 약 50%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올해보다 내년 공급 상황이 오히려 더 빠듯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로트라는 메모리 공급이 수요를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현재 시장을 평가했다.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한 것이 아니라 AI가 데이터센터부터 개인용 기기와 산업 현장까지 확산되면서 메모리 사용량 자체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메모리의 오래된 경기 사이클을 흔들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었다.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몇 년 뒤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가격이 다시 떨어지는 흐름이 반복됐다.
마이크론은 이번 AI 투자 사이클에서는 이전과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가장 강한 수요처로 부상했지만 메모리 수요 증가가 데이터센터에만 머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와 추론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서버 한 대에 필요한 HBM과 D램 용량이 커지고 있고, 스마트폰과 PC에서도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해지고 있다. 자동차와 산업 자동화 장비에 이어 향후 로보틱스까지 본격적으로 성장하면 새로운 메모리 수요처가 추가된다.
결국 AI 가속기 출하량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AI 기능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기에서 평균 메모리 탑재량이 높아지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마이크론의 판단이다. 과거처럼 특정 IT 제품의 판매량 증감만으로 전체 메모리 수요를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공급을 늘리고 싶어도 새 팹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공급이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고 고객 주문이 넘친다고 해서 생산량을 몇 달 안에 크게 늘릴 수는 없다.
새로운 팹을 건설하려면 부지와 전력, 용수, 인허가를 확보하고 클린룸을 완성한 뒤 반도체 장비를 반입해야 한다. 장비 설치 이후에도 실제 웨이퍼 생산과 공정 안정화, 수율 개선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공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마이크론이 2027년 공급 환경을 올해보다 더 빠듯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고객들이 요구하는 물량은 이미 공급능력을 크게 앞서고 있지만 지금 시작한 대규모 증설이 즉시 시장에 물량을 추가할 수는 없다.
HBM 확대도 일반 메모리 공급에는 부담이 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적층하는 구조여서 같은 출하량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웨이퍼와 생산공간이 필요하다. 메모리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 비중을 높일수록 일반 서버용 D램과 PC·스마트폰용 메모리에 배정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
AI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수록 HBM만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D램 시장의 공급 여력까지 빠듯해지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고객들은 5년 계약과 선지급까지 감수
이번 메모리 부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는 고객들의 구매 방식이다. 마이크론은 현재 16곳 이상의 주요 글로벌 고객과 장기 전략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소비자 기기와 자동차 등 여러 시장의 고객이 포함돼 있으며 주요 계약은 5년 단위로 구성됐다.
계약은 단순히 필요한 시점에 물량을 협의하는 일반적인 장기구매계약보다 강하다. 고객이 사전에 정해진 물량을 인수해야 하는 이른바 인수 의무가 포함돼 있다. 실제 수요가 예상보다 약해지더라도 계약한 물량에 대한 의무가 남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고객들이 장기간 공급을 미리 확보하는 이유는 앞으로 필요한 메모리를 시장에서 제때 구하지 못하는 위험을 더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현재 체결한 계약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현금 선지급과 기타 재무적 확약을 합쳐 약 220억달러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몇 년 뒤 공급받을 반도체를 위해 지금부터 상당한 자금을 묶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공급 부족이 단기적인 현물시장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계약 구조가 확대되면 메모리 업체의 실적 특성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경기 악화가 시작되면 고객들이 주문을 취소하고 재고를 줄이면서 메모리 가격과 업체 실적이 동시에 급락했다. 장기 공급계약으로 일정 물량이 미리 묶이면 향후 수요와 현금흐름의 가시성이 이전보다 높아진다.
미국에 2500억달러 투자하지만 생산은 순차적으로 늘어
마이크론은 수요 증가에 대응해 미국 내 메모리 제조와 연구개발에 2,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아이다호주 보이시와 뉴욕주를 중심으로 첨단 D램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미국 내 D램 생산 비중을 장기적으로 크게 끌어올리는 계획이다.
가장 먼저 공급에 기여할 시설 가운데 하나가 보이시의 신규 팹이다. 회사는 첫 번째 보이시 팹에서 2027년 중반 첫 웨이퍼 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첫 웨이퍼가 나온다고 곧바로 수요 부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생산 이후 수율을 높이고 장비를 추가로 채우면서 생산량을 순차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뉴욕을 비롯한 후속 생산시설의 공급 효과는 그보다 더 뒤에 나타난다.
마이크론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갖고 있으면서도 2027년 공급 부족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지금 문제가 투자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새로운 반도체 생산능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클린룸은 먼저 짓고 장비는 수요에 맞춰 넣는다
마이크론은 현재의 강한 수요를 근거로 무조건 장비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메로트라는 시장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장기간 필요한 클린룸 공간은 선제적으로 확보하되 실제 생산장비의 반입 시점은 최신 수요 전망에 따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팹의 건물과 클린룸을 미리 확보하면 갑자기 수요가 늘었을 때 새 공장을 처음부터 건설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장비까지 한꺼번에 채워놓으면 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했을 때 과잉 생산능력이 생긴다.
과거 메모리 산업에서 호황 이후 공급과잉이 반복됐던 만큼 마이크론은 생산공간 확보와 실제 웨이퍼 생산능력 확대를 분리해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지금처럼 공급 부족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인 증설보다 수요에 맞춘 장비 투자를 강조한 것은 향후 메모리 사이클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장기 계약은 메모리 가격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5년짜리 인수 의무 계약이 확대되는 흐름은 향후 메모리 가격 변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는 현물과 단기 계약가격이 급등하면 고객들이 주문을 앞당기고,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재고 소진을 위해 구매를 급격하게 줄이는 행동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가격 상승과 하락이 실제 최종 수요보다 훨씬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장기간 구매 물량이 계약으로 고정되는 비중이 높아지면 메모리 업체는 향후 몇 년 동안 필요한 생산량을 보다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다. 고객 역시 필요한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해 매번 현물가격 급등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는 향후 수요를 확인한 상태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팹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이크론이 고객의 선지급과 계약을 미국 생산시설 투자와 연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금은 우선 증설에 쓰고 남는 돈은 주주에게
AI 메모리 호황으로 늘어난 현금의 사용처도 달라지고 있다. 마이크론은 당분간 가장 중요한 자본배분 순위를 생산능력 확대와 기술개발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현재처럼 공급하지 못해 판매하지 못하는 물량이 많다면 추가 생산능력을 만드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가장 직접적인 성장 투자다. 보이시와 뉴욕 팹을 비롯한 미국 생산시설과 차세대 D램, HBM, 낸드 기술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배정할 계획이다.
동시에 대규모 설비투자 이후에도 잉여현금흐름이 크게 남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적극적인 주주환원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는 마이크론뿐 아니라 SK하이닉스 등 주요 업체가 강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설비투자와 주주환원을 동시에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메모리 호황기에는 다음 불황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장기계약으로 수요 가시성이 높아지면서 초과 현금의 활용 방식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2027년은 HBM만이 아니라 전체 메모리 공급이 관건
메로트라의 이번 발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공급 부족의 대상을 HBM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가 가장 강한 수요를 만들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PC, 자동차, 산업용 장비와 로봇까지 메모리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D램과 낸드 전체의 장기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데이터센터 고객들이 마이크론의 공급 가능량을 크게 넘어선 물량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7년까지 실제 시장에 추가될 신규 웨이퍼 생산능력은 제한적이다. 기존 팹의 기술 전환과 생산효율 개선만으로는 증가하는 수요를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따라서 앞으로 메모리 시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신규 팹 가동 시점과 HBM 생산 비중, 일반 D램에 남는 생산능력이 동시에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론은 공급 개선이 시작되더라도 수요가 따라 올라가는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메모리 가격이 언제 고점을 찍는지보다 새로 들어오는 생산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AI 관련 수요를 언제 따라잡을 수 있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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