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국방생산법으로 정유능력 확대 검토

백악관 국방생산법 활용해 정유능력 확대 검토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정제유 공급 차질과 미국 내 연료 가격 급등이 이어지자 국방생산법을 활용해 국내 정유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규 정유소 건설보다는 기존 시설의 생산능력 확대와 효율 개선에 연방정부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유업체 약 10곳이 참석한 회동에서 국방생산법을 정유산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정유능력을 추가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어떤 형태로 자금과 정책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업계의 의견을 들었다.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참석자들은 추가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방생산법이 실제 정유능력 확대에 사용된 전례는 없다는 점에서 적용 방식과 지원 규모 등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국방생산법은 국가안보에 중요한 물자와 산업의 생산 확대가 필요할 경우 대통령에게 산업 자원의 배분을 지시하고 기업에 금융 인센티브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4월 미국의 원유 생산과 정유, 물류 능력을 확대하는 데 국방생산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유업계 신규 시설보다 기존 공장 증설 제안
정유업체들은 백악관과의 회의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유소를 짓기보다 기존 정유시설의 생산능력을 늘리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연방정부의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 대형 정유소는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인허가와 공사에 수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의 연료 공급 부족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기존 공장의 병목 구간을 개선하거나 설비를 증설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처리 능력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현재 미국 정유시설의 가동률은 약 98%까지 올라 사실상 생산 한계에 가까운 수준이다. 정유사들이 현재 시설을 거의 최대치로 가동하고 있음에도 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 감소와 높은 수요로 휘발유와 디젤 가격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정유능력 자체도 지난 10여 년 동안 일부 수익성이 낮은 시설이 폐쇄되면서 감소했다. 남아 있는 생산능력은 멕시코만 연안에 더욱 집중돼 있어 특정 지역에 허리케인이나 설비 장애가 발생할 경우 전국적인 공급 충격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졌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의 정유능력이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라며 규제 개혁과 인허가 단축, 추가 투자를 통해 정유능력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디젤 6달러 돌파에 중간선거 부담 확대
정유능력 확대 검토는 미국의 연료 가격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오른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국 평균 디젤 가격은 최근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섰고 캘리포니아에서는 평균 가격이 8달러를 돌파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주유기 전광판의 한계 가격인 갤런당 9.99달러까지 치솟았다.
휘발유 가격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이 제한되고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까지 겹치면서 원유뿐 아니라 디젤을 비롯한 정제제품의 글로벌 공급도 빠듯해졌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핵심 수송로인 동서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브렌트유는 다시 배럴당 107달러 수준으로 상승했고 WTI 역시 102달러 안팎까지 올랐다. 사우디와 이란, 예멘 주변의 군사 충돌이 주요 수송로에 동시에 영향을 주면서 미국 내 정유능력을 최대 수준으로 가동해도 연료 가격 상승을 완전히 상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는 연료 가격이 직접적인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이 중간선거 전후로 종료되면 국제유가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공급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행정부는 국내 생산과 정유능력을 직접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게 됐다.
베네수엘라 원유와 텍사스 신규 정유소도 공급 확대 카드
행정부는 국방생산법 외에도 해외 원유 확보와 신규 정유시설 건설을 병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베네수엘라 원유 개발회사 North American Blue Energy Partners의 지분 35%를 미국 정부가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회사는 약 650억 배럴의 확인 매장량이 있는 베네수엘라 유전 17곳의 개발권을 확보했으며, 미국 정부는 향후 생산되는 원유 가운데 일부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됐다. 계약에는 생산량의 20%를 생산원가로 미국 측이 구매할 수 있는 조건이 포함됐다.
백악관은 향후 베네수엘라에서 추가 생산되는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미국 정유시설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원유 생산만으로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중질유 처리 능력을 보유한 미국 정유소에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추가 공급하는 방식이다.
텍사스 브라운스빌에서 추진되는 신규 정유소 프로젝트도 시험대가 되고 있다. America First Refining은 브라운스빌 항구에 하루 16만8,000배럴 처리 규모의 정유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이를 약 50년 만에 추진되는 미국의 첫 신규 정유소 프로젝트라고 발표했다.
프로젝트에는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가 참여해 향후 20년간 정유소 생산물량을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다만 이 사업에 국방생산법에 따른 자금 지원이 실제 제공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정유시설 가동률이 이미 98%에 도달한 가운데 기존 공장의 증설과 효율 개선, 신규 시설 건설,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 국방생산법을 실제 정유능력 확대에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으며 백악관과 정유업계의 후속 협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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