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에 일본 정부도 금리 인상 지지…9월 가능성 부상

일본 정부도 조기 금리 인상 지지 가능성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엔화 약세가 다시 심화되면서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에 부담을 주는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내부에서도 일본은행의 조기 금리 인상을 용인하거나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금리 인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통화정책의 구체적인 수단과 시점은 일본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엔화 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정부와 일본은행의 이해관계가 최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오는 9월 또는 10월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9월 17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약 74%까지 높아졌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연말 인상 전망이 우세했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의 예상이 빠르게 앞당겨진 것이다.
엔화 약세가 일본 정부의 입장 바꿔
이번 변화의 가장 큰 배경은 엔화다. 다카이치 내각은 출범 초기까지만 해도 경기 부양과 재정 확대를 강조하면서 일본은행의 빠른 통화 긴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결정은 일본은행이 내려야 한다고 밝혀왔지만 경제 성장과 임금 상승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에 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껴왔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효과를 약화시키고 일본 국채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다시 크게 떨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원유와 천연가스, 식품, 원자재 등 수입품 가격을 상승시킨다.
에너지와 식량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일본에서는 환율 상승이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와 직접 연결된다. 엔화가 지나치게 약해질 경우 기업 실적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국민의 실질 구매력이 악화될 수 있다.
달러당 160엔 부근이 새로운 경계선
최근 엔화는 달러당 160엔에 다시 접근하면서 일본 정부와 금융시장의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 앞서 미국과 일본 등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엔화는 달러당 약 164엔 부근에서 155엔 수준까지 빠르게 반등했다.
그러나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엔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서 159엔을 넘어섰고 시장에서는 160엔 선이 다시 중요한 심리적 기준으로 떠올랐다.
외환시장 개입은 단기간에 환율을 움직이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어렵다. 일본 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으면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린 뒤 미국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계속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엔화 약세를 지속적으로 막으려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 미국과 일본 사이의 금리 차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미일 환율 방어 효과 유지에도 금리 인상 필요
최근 환율시장 개입 이후 일본 정부가 조기 금리 인상에 이전보다 우호적으로 변한 배경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다.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엔화를 매수하더라도 일본은행이 계속 낮은 금리를 유지하면 투기적 엔화 매도세가 다시 유입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공동 개입 이후 엔화가 상당 부분 상승분을 반납하면서 시장에서는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환율시장 개입과 통화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매수하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엔화를 보유할 유인이 동시에 높아지는 구조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이미 실시한 환율 방어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일본 물가도 추가 금리 인상 뒷받침
일본은행이 조기 인상을 검토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물가다. 최근 일본의 생산자물가는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고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7월 일본 기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비철금속과 화학제품 등 일부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중동 정세에 따른 에너지 비용 상승과 엔화 약세가 기업들의 조달 비용을 높이고 있다.
특히 엔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이 큰 폭으로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비용 증가를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할 가능성도 커졌다.
일본은행은 단순히 일시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이 아니라 임금과 서비스 가격이 함께 오르는 지속적인 물가 상승률 2%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물가가 목표치를 장기간 웃돌 수 있다는 반대 방향의 위험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매파 목소리 강화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있다.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는 일부 정책위원들이 물가의 상방 위험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총 9명의 정책위원 가운데 여러 위원이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내부 논의의 중심도 금리를 올릴 것인지 여부에서 언제 올릴 것인지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0%로 인상했다. 1% 금리는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금융 여건이 아직 완화적이라는 판단도 이어지고 있다. 정책위원 가운데 일부는 중립금리를 향해 몇 달 간격으로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하고 있다.
9월 인상되면 기준금리 1.25% 가능성
시장이 예상하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일본은행이 현재 1.0%인 단기 정책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올리는 것이다.
9월 회의에서 실제 인상이 단행될 경우 지난 6월 인상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금리를 올리게 된다. 최근 일본은행이 보여온 점진적인 정상화 속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다.
일본은행은 2024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서 벗어난 이후 매우 신중하게 금리를 정상화해왔다. 임금 상승이 물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확실하게 정착했는지 확인하면서 정책을 움직였기 때문에 주요 금리 인상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9월 추가 인상이 현실화되면 이러한 패턴이 달라진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이클의 통화 긴축 속도가 1980년대 후반 이후 보기 어려웠던 수준으로 빨라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카이치 내각과 일본은행 이해관계 가까워져
다카이치 정부와 일본은행의 관계가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다카이치 내각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장기 국채금리가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 부채 규모가 큰 일본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이자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리는 장기금리가 급등할 경우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확대해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본은행은 장기간 유지했던 대규모 국채 매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금융시장 기능을 정상화하려 하고 있다. 금리는 올리면서 동시에 국채금리 상승을 억제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럼에도 엔화 약세와 물가 문제에서는 정부와 일본은행의 목표가 상당 부분 일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가 물가를 과도하게 끌어올리는 것을 막아야 하고 정부 역시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민의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BOJ 독립성 강조
정부가 조기 인상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는 관측과 별개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신중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금리를 언제 올리고 어느 정도 조정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통화정책 수단은 일본은행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정부와 일본은행이 경제와 물가 상황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고 임금 상승을 동반한 2% 물가안정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일본은행에 9월 금리 인상을 직접 요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현재 공개된 내용보다 앞선 판단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엔화 약세와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면서 정부가 과거보다 빠른 금리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9월 인상 확률 74%까지 상승
금융시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조기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금리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확률이 약 74%까지 높아졌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9월보다 10월이나 12월까지 기다릴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다카이치 정부가 빠른 금리 인상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판단도 조기 인상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공동 환율시장 개입과 엔화의 재약세, 높은 수입물가, 일본은행 내부의 매파적 발언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빠르게 변했다.
현재 시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일본은행이 올해 금리를 추가로 올릴지 여부보다 9월에 바로 움직일 수 있는지로 바뀌고 있다.
9월과 10월 사이 결정할 핵심 지표
일본은행이 실제 9월 인상을 선택할지는 앞으로 한 달 동안 발표되는 경제지표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다. 소비자물가와 기업물가, 수입물가 상승세가 계속된다면 일본은행이 추가 긴축을 늦출 이유는 줄어든다. 반대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낮아진다면 10월 이후로 결정을 미룰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임금과 소비 흐름도 중요하다. 금리를 빠르게 올릴 경우 가계의 대출비용이 증가하고 기업 투자에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은행은 물가뿐 아니라 내수 경기가 높은 금리를 견딜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환율 역시 사실상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가 됐다. 일본은행은 환율 수준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지 않지만 엔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통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환율 움직임을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 금리 상승은 글로벌 시장에도 영향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은 일본 국내에만 영향을 주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자산 보유국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은 미국과 유럽의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
일본 금리가 올라가면 해외 채권에 투자해야 할 유인이 일부 줄어들 수 있다. 환헤지 비용까지 고려할 경우 일본 국채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줄이고 국내로 자금을 옮길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과 채권, 신흥국 자산 등에 투자했던 거래는 일본 금리가 올라갈수록 수익성이 낮아진다.
따라서 예상보다 빠른 BOJ 금리 인상은 엔화 강세뿐 아니라 일본 국채 금리와 미국 국채, 글로벌 주식시장까지 동시에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
엔화가 9월 회의까지 가장 중요한 변수
현재 일본 통화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정부와 일본은행의 이해관계가 엔화 약세를 계기로 이전보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여전히 경기 부양과 재정 확대를 중시하고 일본은행도 정책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약한 엔화가 수입물가와 생활비를 끌어올리는 상황은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다.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엔화의 방향을 장기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이 환율 안정 정책의 다음 단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향후 엔화가 달러당 160엔 부근에서 다시 약세를 보이고 물가 상승 압력까지 이어진다면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엔화가 안정되고 경제지표가 약화될 경우 일본은행이 10월까지 기다릴 여지도 남아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의 완화적 정책 성향이 BOJ의 조기 인상을 막는 요인으로 평가됐지만 최근에는 엔화와 물가가 정부의 입장까지 변화시키는 변수가 되고 있다.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는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 속도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에 어느 정도까지 통화 긴축을 용인할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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