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의 과거 전망으로 본 인플레이션 판단 방식

워시의 과거 전망에서 드러난 인플레이션 판단 기준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향후 경제와 금리 전망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는 기존 연준의 방식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운데, 과거 연준 이사로 활동하던 시기의 전망 기록이 현재 그의 통화정책 판단 방식을 살펴볼 단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워시 의장이 현재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이 제출하는 경제 전망이나 금리 점도표와 같은 전통적인 전망 체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금융위기 전후 연준 이사로 재직하던 시기에는 자신의 경제 전망을 정기적으로 제출했으며 당시 기록에서 다른 정책위원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워시는 당시 다른 연준 인사들보다 물가 상승 위험을 지속적으로 크게 평가했다.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경기 부진과 높은 실업률만으로 물가 압력이 충분히 억제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연준 내부의 일반적인 분석에서는 경제에 상당한 유휴 생산능력이 존재하고 실업률이 높으면 임금과 가격 상승 압력이 약해진다는 판단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반면 워시는 경제의 수요 부족만으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기보다 정부 정책, 기업 환경, 생산성, 금융시장 구조와 같은 공급 측면의 변화가 경제의 실제 생산능력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봐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높은 실업률에도 구조적 문제를 함께 봤던 워시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융위기 이후 높은 실업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당시 다수의 정책 담당자들은 높은 실업률을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족의 결과로 봤지만 워시는 모든 실업을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기순환적 현상으로 보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워시는 기업의 신규 설립과 투자 환경, 규제와 재정정책을 포함한 정부 정책 등이 고용 회복을 제한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제 전체의 수요가 부족해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경제의 공급 구조 자체에서 발생한 문제가 고용을 제약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같은 접근은 인플레이션 판단에도 연결됐다. 경제 활동이 잠재 수준을 얼마나 밑돌고 있는지를 추정할 때 경제의 생산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하면 물가를 억제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 역시 실제보다 크게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 워시가 당시 제기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따라 워시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원자재 가격 상승과 비용의 소비자 가격 전가,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의 움직임을 주요 위험으로 거론했다. 경기 부진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통화정책이 장기간 지나치게 완화적으로 유지될 경우 이후의 물가 안정에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을 계속 경계했다.
과거 인플레이션 경고는 당시 현실과 상당한 시차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워시가 당시 우려했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그의 연준 이사 재임 기간에는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짚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오히려 낮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졌고 연준은 물가 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워시가 경계했던 형태의 강한 인플레이션은 약 10년 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났다. 팬데믹 기간 공급망 차질이 발생한 가운데 대규모 재정 부양책과 통화 완화가 동시에 시행됐고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수십 년 만의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은 워시가 과거 물가 위험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지만 실제 발생 시점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의 과거 기록을 단순히 인플레이션 전망의 적중 여부로 보기보다는 어떤 경제 지표와 구조적 변수를 정책 판단에서 중요하게 취급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점도표보다 경제 구조 변화에 무게
연준 의장으로 돌아온 워시는 과거보다 경제 전망을 수치로 제시하는 데 오히려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연준이 장기간 활용해 온 포워드 가이던스와 금리 점도표를 포함한 전망 체계가 불확실한 경제 환경에서 실제보다 높은 예측 가능성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워시는 현재 자신이 예상하는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향후 기준금리 수준을 기존 방식의 구체적인 전망치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과거 경제 전망이 반복적으로 수정됐고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도 기존 경제모형이 예상한 경로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점이 이런 접근의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다.
워시 체제의 연준은 동시에 기존 통화정책 분석 체계를 재검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가를 움직이는 원인과 경제의 생산능력 변화를 기존 모델이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 다시 살펴보는 작업이며, 생산성과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기술 변화 역시 주요 검토 대상에 포함돼 있다.
AI 생산성 효과가 새로운 공급 측면 변수로 부상
과거 워시가 정부 정책과 생산성을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구조적 변수로 중시했다면 현재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이다. 워시는 최근 AI를 비롯한 기술 발전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는 AI 투자가 단순히 단기적인 투자 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가 물가 상승 없이 생산할 수 있는 규모 자체를 확대할 수 있는지를 통화정책 판단에 반영하려는 접근이다. 워시는 올해 의회 증언에서도 AI 투자가 경제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생산성 증가가 이미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과 새로운 기술이 미국의 생산능력에 미칠 영향을 연준이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AI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와 첨단 컴퓨팅 장비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먼저 발생하면 단기적으로 자본과 전력, 노동 등에 대한 수요를 늘릴 수 있는 반면 생산성 향상이 빠르게 나타날 경우 기업의 단위 생산비용을 낮추고 공급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준 내부에서도 AI의 수요 확대 효과와 공급 확대 효과가 각각 어떤 속도로 나타나는지를 통화정책상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매파 분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책 성향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토대로 워시를 단순히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매파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정책 판단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높은 실업률과 경기 부진에도 물가 위험을 상대적으로 크게 평가했지만 그 판단의 배경에는 단순히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보다 경제의 공급능력이 일반적인 추정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 AI와 생산성에 대한 접근 역시 같은 공급 측면의 관점에서 연결된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경제의 생산능력이 강하게 확대된다면 높은 성장률이 반드시 같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높은 실업률이나 경기 둔화가 나타나더라도 공급 측면의 제약이 지속된다면 물가 압력이 자동으로 해소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워시의 과거 기록에서 나타난 특징이다.
현재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2% 목표를 5년째 웃돌고 있다. 동시에 AI 투자 확대가 생산성과 노동시장, 자본 수요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지는 아직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고 있다. 워시가 과거부터 중시해 온 공급 측면의 구조적 분석이 다시 중요한 정책 판단 요소가 된 상황이다.
워시는 오는 28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연준 의장 자격으로 기조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향후 구체적인 경제 전망치와 금리 경로를 제시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장기간 지속된 인플레이션과 AI를 중심으로 한 생산성 변화에 어떤 정책적 기준을 적용할지가 시장이 확인해야 할 다음 통화정책 신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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