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스페인 정치 불안에 유로화 17개월 만에 최저

유로화, 달러 대비 17개월 만에 최저
유로화 가치가 달러 대비 17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로존 내부의 정치 불안과 재정 건전성 우려가 한꺼번에 겹친 영향이다. 유로화는 5일(현지시간) 아시아 거래에서 한때 0.8% 떨어진 유로당 1.1161달러까지 밀렸다. 2025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로화는 이후 낙폭을 일부 줄여 0.47% 내린 1.12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유로화는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헤지펀드들이 현물 시장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를 대거 팔았다. 트레이더들에 따르면 이 매도세가 옵션 행사 가격대를 건드리면서 낙폭이 더 커졌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에 따른 달러 강세도 맞물렸다.
유로화는 달러뿐 아니라 스위스프랑과 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에 대해서도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유로화는 지난주 목요일 이후 스위스프랑 대비 1.8% 떨어졌고, 이날도 0.32% 내린 0.9295스위스프랑에 거래됐다.
프랑스·독일 국채 금리 차 2011년 이후 최대
가장 큰 불안 요인은 프랑스다. 프랑스의 높은 부채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독일 국채 대비 프랑스 국채 금리 차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금융정보업체 LSEG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 차는 약 146bp(1bp=0.01%포인트)로, 지난주 17년 만에 가장 큰 주간 확대 폭을 기록했다.
유로존 2위 경제국인 프랑스가 공공재정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책금리 인상 전망과 202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프랑스 국채에 매도 압력이 쏠렸다. 투자자들은 정치 분열이 대선 전 재정 건전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CAC40 지수는 1% 넘게 떨어졌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소수 정부는 지난 1일 2027년 예산안을 공개했다. 지출 억제와 세수 확대 등 모두 540억 유로 규모의 재정 개선 방안을 담았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5.4%인 재정적자를 2027년 5%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부채가 GDP의 약 122%로 사상 최대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존 전체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말 88.9%였다.
깊이 분열된 의회에서 긴축 예산을 통과시켜야 하는 만큼 예산 논의가 총리 불신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선 주자인 장뤼크 멜랑숑은 ECB가 보유한 프랑스 국채를 탕감하자고 제안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를 EU 조약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일축했다.
스페인 11월 29일 조기 총선
스페인의 정치 불안도 불확실성을 키웠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11월 29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의회가 지난주 금요일 소수 정부가 낸 주택 관련 긴급 법령 2건을 부결시킨 데 따른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주택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해지고 있다.
다만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오전 4.07~4.09% 사이에서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독일 국채 대비 금리 차는 약 65bp로 프랑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스페인 IBEX35 지수는 산체스 총리의 발표 직후 약세로 돌아섰다가 0.4% 오름세로 마감했다.
“벨기에·이탈리아로 전이” vs “2008·2011년과 달라”
프랑스 국채시장의 긴장이 유로존 다른 나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벨기에 KBC은행 애널리스트들은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벨기에와 이탈리아 같은 나라로 “분명한 전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일 하루 새 10bp, 프랑스 10년물 금리는 11bp 오르기도 했다.
반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금은 2008년이나 2011년이 아니다”라며 재정위기 재연 우려에 선을 그었다.
유로존의 어려움은 다른 선진국과도 겹친다. 미국과 유럽 모두 높은 물가와 금리, 차입 비용 부담을 안고 있지만, 유로존은 여기에 낮은 성장률과 분절된 채권시장, 정치 불안까지 겹쳤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일 장중 5.34%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2027년 말까지 0.25%포인트씩 네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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